가나안 및 주변 지역의 주요 족속들이 지도 상의 어느 지역에 거주했는지를 아는 것은 사사기 및 왕정시대에 일어나는 침략 및 전쟁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 주변 족속들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치셨다. 가나안 및 주변 지역의 대부분의 작은 족속들은 앗수르와 바벨론과 같은 제국 시대에 멸절되었다.

  • 가나안 7족속: 가나안, 기르가스, 브리스, 아모리, 여부스, 헷, 히위 (가나다 순)
족속 이름 내용
가나안 가나안 땅에 거했던 7족속 전체를 말하기도 하지만 그 중 한 족속인 가나안 족속을 의미하기도 함. 가나안 족속에 대해서는 성경에 자세한 언급 없음
기르가스 성경에 자세한 설명 없음
브리스 아브라함 때부터 가나안에 지냈으며, 정복전쟁 후에도 일부 남아 있다가 유다 족속에게 많은 수가 죽임당하고, 후에 솔로몬이 노예로 삼음(대하 8:7-8)
아모리 요단강 동편의 아모리 족속(시혼, 옥)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 전에 진멸당하고 이들의 땅이 3개 지파에게 먼저 분배됨. 여호수아가 가나안 내부의 아모리 족속(다섯 왕)을 무찔렀으나 완전히 진멸되지는 않음. 이들이 섬기던 바알과 아세라 우상이 이스라엘에 들어오게 됨

아모리족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겼다고 성경에 직접 기록되어 있진 않으나, 아합(왕상 21:26)과 므낫세(왕하 21:11)게 아모리인들의 우상 숭배를 따라했다는 언급과 아합과 므낫세가 숭배한 우상이 바알과 아세라였다(왕상 15:31-33, 왕하 21:2-7)는 것을 종합하였을 때 아모리족속의 우상이 바알과 아세라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음
여부스 예루살렘 지역에 거했던 족속으로, 다윗 왕 때가 되어서야 이 땅을 정복함. 솔로몬이 성전 건축 때 여부스 족속에게 부역을 시킴
아브라함이 사라를 장사지내기 위해 헷 족속에게서 막벨라 지역을 사서 그 굴에 장사함. 이스라엘은 헷 족속을 완전히 진멸시키지 못하고 그들과 통혼하는 죄를 지음
히위 여호수아를 속여 화친을 맺고 이스라엘의 종이 됨
   

그들의 마음이 완악하여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러 온 것은 여호와께서 그리하게 하신 것이라. (수 11:20)

 

  • 가나안 7족속 외 주요 종족
족속 이름 내용
아말렉
  • 위치: 남서쪽 해안가
  • 가나안 남부 지역에 위치. 이삭의 아들 에서의 자손(창 36:12).
  •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였을 때, 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유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치고 노략질하였으므로(출 17장), 하나님은 아말렉을 진멸하실 것이라 약속하심.
  • 사울은 말씀을 어기고 아말렉(아각 왕)을 진멸하지 않음.
  • 다윗이 블레셋 땅 시글락에 거할 때, 아말렉이 시글락을 약탈하였기에 다윗이 쫓아가서 승리함.
  • 후에, 페르시아(바사) 시대에 와서 아각 왕의 후손인 하만이 유대인을 전멸시킬 궤계를 세웠으나 모르드개와 에스더로 인해 실패하였음.
블레셋
  • 가나안 남서부 해안에 위치.
  • 발달된 철제 무기를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꾸준히 괴롭힘.
  • 사사시대에 삼손이 블레셋을 대적하였으며, 후에 두 눈이 뽑힌채로 산당을 무너뜨림.
  • 엘리의 두 아들이 블레셋을 대적하기 위해 언약궤를 들고 나갔다가 전쟁에서 죽고 언약궤를 빼앗김 (아벡전투).
  • 사무엘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고 에벤에셀을 기념함 (미스바 전투).
  • 사울 왕 초기에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을 이김.
  • 다윗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이김.
  • 다윗이 광야에서 도피생활을 하던 중 잠시 블레셋에서 활동하였음.
  • 악행을 저지른 남유다 아하스 왕(12대) 시대에 블레셋이 노략함.
암몬, 모압
  • 아브라함 조카 롯이 두 딸을 통해 얻은 자손들임.
  • 요단강 동편에 거주하였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입성하기 전에 이들과 부딪혔으나(발람 사건, 고므리 사건) 이때는 하나님께서 이들 족속들을 살려두셨으므로 전쟁은 하지 않음.
  • 이스라엘로 하여금 음행과 관련된 죄를 짓게 함.
  •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은 모압 여인임. 나오미가 기근을 피해 모압에 갔으나 남편과 두 아들 잃고 룻과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왔음.
  • 사울, 다윗, 솔로몬은 암몬과 모압을 대적하여 승리함.
  • 이스라엘이 이들과 전쟁을 치르는 동안 다윗이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지음.
  • 솔로몬은 암몬과 모압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이들의 신을 우상숭배함.
  • 분열왕국 시대에 암몬과 모압이 남북 왕국을 자주 대적함.
  • 바벨론 포로 귀환 당시 성전 재건을 방해함.
  • 이들 족속은 멸망할 것으로 예언됨(렘 48장, 겔 25장, 암 1~2장).
에돔
  • 에서의 자손으로 사해 남쪽에 거주.
  •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입성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살려두셨으므로 전쟁은 하지 않음
아람
  • 셈의 아들의 이름으로, 아람 사람의 조상이 됨.
  • 오늘날의 시리아에 해당되며, 수도는 다메섹(다마스커스).
  • 가나안 땅의 북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분열왕국 시대에 북이스라엘과 자주 부딪힘.
  • 아람어: 가나안을 포함한 중동 지역에서 사용되던 언어. 예수님이 아람어를 사용하셨음.

 

가나안 및 인근 지역 나라/족속들

연대 내용
BC 1102년 경 엘리의 두 아들인 홉니와 비느하스는 아벡 전투에 언약궤를 들고 나갔다가 블레셋에 패배하고 언약궤를 빼앗김
BC 1102 ~ 1101년 경 언약궤는 약 7개월 동안 블레셋에 머물게 되는데, 언약궤가 있는 곳마다 환란이 생겨서 블레셋은 언약궤를 아스돗 > 가드 > 에글론으로 옮겼다가 다시 이스라엘에 돌려줌

블레셋에서 가까운 도시인 벧세메스로 언약궤가 돌아왔는데, 주민들이 뚜껑을 얼여보다가 즉사함 (삼상 6장)

기럇여아림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으로 옮겨서 BC 1082년 경(미스바 전투가 있던 해)까지 20년간 보관되었다고 기록됨 (삼상 7장). 그 이후,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에 돌아갈 때까지 어디에 보관되었는지 기록되지 않았으나, 아비나답의 집에 더 있었을 수 있음.
BC 1003년 경 언약궤는 사무엘 통치(32년), 사울 통치(40년), 다윗의 헤브론 통치(7년 6개월) 기간 동안 성막을 떠나 있었음. 다윗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예루살렘으로 옮겨짐. 다윗은 성전을 짓고 하나님의 궤를 안치하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은 성막 건축을 허락지 않으셨음.

다윗은 언약궤의 운반 방법을 몰랐음. 언약궤가 수레를 이용하여 옮겨지는 도중 언약궤 운반을 맡은 웃사가 언약궤에 손을 대고 즉사하였으며, 이로 인해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는 중 오벧에돔의 집에 3개월 정도 머무르게 됨(하나님께서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심).

다윗은 말씀에 적힌대로 레위지파의 성별된 고핫 자손으로 하여금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운반하도록 함. 언약궤가 예루살렘에 마련된 성막으로 옮겨짐. 다윗은 기뻐 춤을 추다가 바지가 벗겨지는 줄도 모름. 언약궤가 돌아온 후,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을 축복하고 백성들에게 선물을 나눠줌.
BC 959년 솔로몬 통치 제4년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제11년에 성전 건축을 완성. 언약궤는 성전의 지성소에 안치됨. 성전의 봉헌식 당시 성전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하여 제사장들이 사역을 할 수 없을 정도였음.
BC 587년 시드기야왕 제11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의 침공으로 성전이 파괴되었으며 (왕하 25장, 렘39장), 현재까지 언약궤의 행방을 알 수 없음.
오늘날 언약궤 및 언약궤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두 개의 돌판,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언약의 실제가 되심으로써 모든 언약을 이루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성소와 지성소(언약궤가 안치되었던 장소)를 구분짓는 휘장이 찢어지고 우리는 곧바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됨.

오늘날은 구분된 지성소도 없으며 언약궤도 존재하지 않음. 또한 예수님께서 몸소 언약을 완성하심으로써 물리적인 언약궤는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음. (언약궤가 있었다면 사람들이 언약궤를 숭배하였을 것임)

하나님이 거하시는 우리 몸이 거룩한 성전이며, 언약궤 대신에 그 본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심.

 

  • 배경
    • 사사시대 중에 있었던 일
    • 사사시대: 신앙을 잃어버리고 타락함. 이방의 침입입 잦았고 국가적으로 혼란함.
  • 구조
    • 1장: 룻의 가족은 기근으로 인하여 모압(이방)으로 이동하여 10년을 거주. 그러는 중 남자(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 3명이 죽음
    • 2장: 두 과부(나오미, 룻)는 따라 유대 땅으로 돌아옴.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줍기를 함. 보아스가 룻을 알게 됨.
    • 3장: 나오미가 룻에게 지시하여 타작마당에서 보아스를 만나게 함. 보아스는 기업 무를 것을 룻에게 약속함.
    • 4장: 보아스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업을 무를 절차를 밟음.
  • 주제의 중요성
    • 룻기는 ‘기업무를 자’의 역할과 사명에 대해 말한다. 기업무를 자는 친족이어야 하고, 기업 무를 능력이 있어야 하고, 기업을 무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모든 의무를 다해야 한다.
    • "기업을 무르다"는 말의 의미
      • 기업(基業): 재산, 개인적 사업, 땅, 가계 등을 의미
      • 무르다: 내가 바꾼(산) 물건을 임자에게 되돌려주고 내 물건(돈)을 되찾는 것. 이미 행한 일을 그 전의 상태로 돌리는 것(장기나 바둑을 둘 때 한 수를 물러주는 것)
    • 룻기에서 말하는 "기업 무르는 일"의 의미: 나오미/룻의 남편이 죽고 집안이 망하여 기업(땅, 가계)을 이어갈 수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그 기업이 넘어갔다. 여기에서의 기업은 (1) 땅 (2) 가계 두 가지를 동시에 의미한다. 나오미/룻은 땅도 잃었고, 자녀 없이 남편들이 모두 죽어 가계도 끊어지게 되었다. 보아스는 나오미 대신에 돈을 지불하여 땅도 되찾아주었고 또한 자신이 직접 룻과 결혼하여 가계를 이어주는 '기업 무르는 자'의 역할을 감당하였다.
    • 기업 무르는 것과 관련된 이스라엘 풍습
      • 레비레이트 혼(Levirate Marriage): 이스라엘에서는 자식이 없이 과부가 된 여인은 가장 가까운 가족/친척에게 자손을 낳아 기업을 무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보아스는 성문에서 가장 가까운 친족과 대면하였고, 가장 가까운 친족이 거절하자 그 다음 가까운 친척이었던 보아스가 룻의 가계를 잇게 된 것이다.
      • 재산의 소유권: 이스라엘에서는 재산(땅)을 팔 때 그 사용 권리를 파는 것이지 소유권을 파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중에 돈이 생기면 그 재산을 되살 권리가 있다. 그런데 이 재산(땅)은 친족이 대신 사 줄 수도 있다. 나오미/룻이 가장 가까운 친족은 재산을 대신 사줄 수 있었지만 룻과의 레비레이트 혼 책임은 지려고 하지 않았다. 그 다음 가까운 친족이었던 보아스는 재산에 대한 책임과 이방여인 룻을 아내로 삼고자 하는 책임을 모두 지고자 하였다.
    • 구속사적 관점에서의 룻기의 해석: 보아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한다. 죄의 삯으로 우리는 생명을 잃었고 그 대가로 사망을 받았으나, 그리스도는 기업 무를 자로서 죄값을 대신 지불하고 우리가 가진 본래의 기업(=생명)을 되찾아 주셨다. 룻(유대인이 아닌 그리스도의 교회)은 이방인이었으나 나오미(유대인)를 따랐고 그로부터 신앙이 이어졌으며,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기까지 한 보아스(예수 그리스도)의 넓은 사랑/긍휼/자비/은혜로 인해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가게 되었다.
    • 룻기의 또 다른 중요성: 그리스도의 계보를 잇는 자로서, 룻은 다윗의 증조모(보아스 > 오벳 > 이새 > 다윗)


사사기의 결론(17 ~ 21장):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타락

  • 17장: 미가의 종교적 부패
  • 
18장: 기업을 버린 단 지파

  • 19장: 기브아의 도덕적 부패

  • 20~21장: 거의 멸절된 베냐민 지파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17장 6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장 25절)"


*연표의 기준: 본 연표는 '구속사 시리즈'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또한 아벡전투가 역사적으로 BC 1102년 경에 있었던 것으로 봤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 한편으로 삼손의 활동 기간과 아벡전투가 더 이후의 일이었을 것이라고 주장되기도 하며 그 연도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는데, 그렇다면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기간(32년)이 짧아지게 되고 사무엘이 활동했을 때의 나이가 달라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연표의 추정과 관련 인물들의 나이에 관한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통일왕국이 시작된 해가 BC 1050년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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