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원하건대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에 저장한 물과 태양이 결실하게 하는 선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선물과 옛 산의 좋은 산물과 영원한 작은 언덕의 선물과 땅의 선물과 거기 충만한 것과 가시떨기나무 가운데에 계시던 이의 은혜로 말미암아 복이 요셉의 머리에, 그의 형제 중 구별한 자의 정수리에 임할지로다. 그는 첫 수송아지 같이 위엄이 있으니 그 뿔이 들소의 뿔 같도다 이것으로 민족들을 받아 땅 끝까지 이르리니 / 스불론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 바다의 풍부한 것과 모래에 감추어진 보배를 흡수하리로다 / 아셀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아셀은 아들들 중에 더 복을 받으며 그의 형제에게 기쁨이 되며 그의 발이 기름에 잠길지로다
이스라엘의 14~16대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임기: 1969년 ~ 1974년)는 "모세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사막을 끌고 다니다가 석유가 없는 이 중동 땅으로 우리를 인도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때까지 탐사된 유전들은 경제적 가치가 없었다.) 바로 인근 중동 지역에서는 석유가 많이 산출되는 반면 이스라엘은 황무지였던 것이 그만큼 이상해보이긴 하였다. 하지만 기독교 신자인 존 브라운과 유대인이자 지구물리학자였던 토비아 루킨스는 신명기 33장의 위 말씀에서 말하는 '선물', '모래에 감추인 보배', '그 밭이 기름에 잠길지로다'는 말씀 등에서 영감을 받아 이 지역에서 석유가 생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확신했다. 이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땅 지역에서부터 석유 탐사를 시작하였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경제적 가치가 있는 원유 및 천연가스 자원이 발견되기 시작하였다. 2013년 세계에너지협회(WEC)에 따르면 이스라엘 북부 Shfela 지역에서 발견된 석유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인 것으로 발표되었다.
1차 인구 조사(민 1~4장): 광야 생활 제 2년차, 12정탐꾼에 앞서 전쟁을 치를 남자의 수를 계수하였다. 하지만 12정탐꾼 사건으로 불신앙을 보인 603,550명의 20세 이상 남자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38년 광야생활 동안 모두 죽었다.
2차 인구 조사(민 26장): 총 40년 광야생활이 끝난 후, 가나안 정복과 땅 분배를 위해 다시 20세 이상 남자의 수를 계수하였다. 전체 남성의 숫자는 40년 전과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파별 인구의 수는 땅 분배와 연관이 된다. 인구의 수는 영적 장자권을 얻은 유다 지파의 수가 가장 많았다. 요셉은 지파에 들어가지 않고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배출하여 두 지파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두 지파의 수를 합하면 지파 중에서 가장 인구가 많으며, 므낫세 지파가 얻은 땅이 지파 중에서 가장 넓음). 저주를 받은 시므온 지파는 인구도 점차 줄게 되고(모압 여자와의 음행으로 인한 역병 때문에 24,000명이 죽음) 후에 유다 지파에 흡수된다(유다 지파 안에서 흩어져 지냄).
유월절과 제사에는 희생제물이 필요함.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희생제물이 되셨음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함. 그리스도는 처녀에게서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육으로 나지 않으셨기 때문에 흠(원죄)이 없었고, 따라서 제물이 될 수 있었음 -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벧전 1:19-20)
죄를 전가 받음. 누가 예수님께 직접 안수한 것은 아닙니다만, 그리스도는 비슷한 일을 당하심. 즉, 대표성을 가진 제사장들이 죄를 뒤집어 씌웠고, 재판을 통해 죄 있다고 판결/선고를 받아 죄인 취급이 되심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온 몸의 피가 완전히 다 흘러나옴. 이는 완전히 태워진 것과 같은 의미
레위기 4장에서 개인이 아니라 만약 온 회중이 죄를 지으면, 회중의 장로들(대표들)이 안수(죄의 전가)하고, 소를 잡은 후 진영(성) 밖에서 제사를 지냈음. 그리스도는 온 백성(온 인류)의 죄사함을 위해 예루살렘 밖(성문 밖)의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서 죽으셨음. -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히13:12)
이 죄사함은 한 번에 이루신 것입니다. 짐승의 피는 일회적이고 제한적인 속죄를 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결과는 영원하고 완전한 속죄이며, 이는 단번에(at once) 이루어졌습니다(히9:11-28). 그리스도가 또 다시 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홍해는 ‘이집트의 왕자’ 애니메이션에서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좌우로 갈라진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밤새 동풍이 불어서 물이 갈라져 길이 생기고 마른 땅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물은 좌우에 벽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갈라져 마른 땅과 같이 되었다고는 하나 그 곳은 깊고 울퉁불퉁하고 어두운 지형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백성들이 홍해를 건널 때는 밤 또는 이른 새벽이었을 것이라고 시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히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믿으며 그 깊고 어두운 바다를 건넜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니 (히 11:29)”
홍해 중에서 모세가 건넌 곳의 위치는 알 수 없지만, 오늘날 홍해의 너비는 최소 8 km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평지를 걷는 속도가 시속 4 km 정도가 되므로 8 km를 건너려면 빨라도 2시간은 걸립니다. 때는 어두운 시간이었는데 바다의 가운데로 갈 수록 점점 더 깊어졌을 것이고 또 마지막은 언덕길처럼 올라가야 했을 것입니다. 어둡고 바닥도 울퉁불퉁한 곳을 노인, 어린 아이, 짐수레, 가축들과 함께 건너기 위해서는 어쩌면 3시간은 더 걸렸을 수 있겠습니다. 200만 명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식간에 그 곳을 지나간 것도 아니고 줄을 서서 차례로 차례로 지나가려면 갈라진 바다가 아무리 넓어도(적어도 아래 그림보다는 훨씬 넓었을 것임) 수 시간은 걸렸을 것입니다. 앞선 사람들은 물이 벽처럼 된 갈라진 바다 깊은 어두운 곳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가야 했습니다. 뒤에 선 사람들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지켜보며 앞선 사람들이 조금씩 빠져나가길 기다리며 초조해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200만명 모두가 한결같이 침착했을 것 같으며, 서두르거나 요동하거나 큰 사고남 없이 무사히 지나갔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고전10:1-2)”
이 과정은 하나의 의식을 치르는 것과도 같은 엄숙함 가운데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이 홍해를 지난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과정 중에서도 물세례를 의미합니다. 애굽이라는 죄된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낮고 어두운 곳을 통과해야만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그 속으로 스스로 발걸음을 옮겨야 합니다.
10가지 재앙 중 마지막 재앙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해야 될 일에 대해서 명령하셨습니다. 흠 없는 어린 양을 잡아서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는 것을 비롯한 몇 가지 간단한 명령이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첫 명령‘이었고, 그 전에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경험이 없었습니다. 약 3주 동안의 9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된 백성들은 모세의 전달을 받고 그 명령에 따라 문설주에 피를 발랐습니다. 하지만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의 명령을 가볍게 여기고 명령을 시행하지 않은 자의 집에서 장자는 살아나지 못했습니다.
유월절은 유대인 달력(음력)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매년 양력 날짜와 요일이 바뀝니다. 유대인은 유월절이 되면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명 받은 한 자녀가 “이 예식은 무엇을 뜻합니까?”라고 물어봐야 하며, 어른들은 자녀에게 이집트에서의 해방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게 됩니다. 유월절 음식으로는 살과 내장을 모두 구운 양고기, 무교병(누룩을 넣지 않은 빵), 쓴 나물 등을 먹습니다. 곧바로라도 이집트를 떠날 수 있을 것처럼 신을 신고 허리띠를 두른 뒤 지팡이를 잡고 식사를 하며, 아침이 될 때까지는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유월절이 끝난 후 7일동안은 무교절 기간으로, 계속하여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습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연속된 하나의 절기로 여겨집니다. 유대인 달력을 보면 유월절 I일 유월절 VII일 식으로 표시되어 있고, 우리의 기준으로 보면 총 8일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의 하루는 해가 지는 시간부터 다음 날 해가 지기 직전까지로 계산되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음력 3월 14~15일, 즉 보름달이 뜨는 날 시작됩니다.
유월절은 '여호와의 절기'이며, '하나님의 영원한 규례'라고 하였습니다(출애굽기 12장). 즉,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영원히 지켜지게 될 하나님의 약속이자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입니다. '흠 없는 누군가가 대신 죽으면 나는 죽지 않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이처럼 출애굽의 전 과정, 유월절 자체 및 유월절에 관련된 풍습과 음식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및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과정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악한 세상(애굽)에서 20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단번에 나올 수 있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과 같이 돌아가심으로써 예수님을 믿는 모든 인간(출애굽 당시 모세의 말을 따라 피를 발랐던 사람처럼)을 죄된 세상로부터 단번에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시사 죄와 사망으로부터 승리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취하셨으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더 이상 죄사함과 구원을 받기 위해 매번 다른 양을 잡을 필요가 없게 된 것입니다.
(추가 내용) 유월절에 대하여 묵상하다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은 유월절이고 유월절 직후에 부활하셨을텐데, 왜 오늘날 교회는 유월절과 전혀 관련이 없는 날을 성금요일 및 부활절로 삼아 기념하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교회력(카톨릭에서 유래)에 따라 부활절을 기념합니다. 그레고리력을 기반으로 한 교회력에 따르면 춘분 이후에 맞이하는 첫 보름 직후의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을 부활절로 정하고 있습니다. 춘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로 대략 양력 3월 21일 전후가 되고, 보름달이 뜨는 날은 매년 다릅니다. 따라서 부활절은 3월 몇째 주 식으로 정해지지 않고 매년 달라집니다. 2023년의 부활절은 4월 9일이었고, 2024년의 부활절은 3월 31일이었습니다. 대략 3월 말에서 4월 중순 사이입니다. 그리고 교회력에서는 이 부활절을 기점으로, 며칠 전을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돌아가신 날을 성금요일이라고 부르며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유대력에 따른 유월절(예수께서 돌아가신 날) 및 부활하신 날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유대력은 음력이므로 유월절은 매년 날짜와 요일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유대력에 따른 예수님 돌아가신 날(유월절)은 교회력에서 기념하는 예수님 돌아가신 날(성금요일)과 시간적 거리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2024년의 유월절은 4월 22일(월) 저녁부터이고, 성금요일은 3월 29일(금)입니다(부활절은 3월 31일). (한편, 예수께서 부활하신 요일은 안식일 다음날인 일요일이 맞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돌아가신 요일이자 그 해의 유월절은 금요일이 아니라 수요일 또는 목요일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이는 로마시대의 초기 기독교가 번성할 때, 로마 황제에 의하여 실제 유월절과 관계 없이 새로운 계산법으로 부활절이 정해졌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공인할테니 특정한 절기는 로마에서 정한 날짜를 따르라는 모종의 거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로마에서 정한 부활절 날짜는 오늘날 '이스터'라고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이슈타르, 에오스트레, 아스다롯(아세라) 여신을 기념하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근원적으로는 로마가 기독교의 부활신앙과 부활사상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이 정신을 훼파하고자 하는 의도 저변에 깔려 있었으며, 표면적으로는 봄철에 모든 생명이 소생시킨다고 여긴 이스터를 기념하는 날과, (의미상 유사한)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을 교묘하게 합하여(게다가 두 날짜 모두 기념일이 일요일이었으므로) 나라의 큰 축제의 날로 삼은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에도 부활절을 이스터 데이라고 부르며,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토끼와 계란의 형상을 장식하고 계란을 나누어 먹는 방식의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유월절을 지켜야 하는가, 실제 유월절 3일 후를 부활절로 삼아야 하는가, 오늘날 부활절 문화에 대한 부적절성 등에 관련된 주제는 이 블로그에서 다루지 않습니다.)